기존에는 KBS, MBC, SBS로 대표되는 공중파 3사가 드라마의 제작과 방영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과 같은 OTT(Over The Top) 플랫폼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유통 채널의 다변화를 넘어 드라마의 기획, 연출은 물론 시청자와의 소통 방식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중파와 OTT 드라마의 플랫폼 특성, 주요 시청자층의 반응, 트렌드 변화 양상을 비교하고 ‘크로스 플랫폼’의 가능성도 살펴보겠습니다.
공중파 드라마의 특징과 전통적 강점
공중파 TV는 수십 년간 한국 드라마의 기틀을 다져온 전통적인 플랫폼입니다. KBS, MBC, SBS는 전국 단위의 채널 접근성을 기반으로 보편적인 시청 환경을 제공해왔고,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공중파의 최대 강점은 ‘보편성’과 ‘검증된 연출력’입니다. ‘태양의 후예’(KBS)는 안정적인 서사와 전통적 감성, 스타 캐스팅을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동이’(MBC), ‘별에서 온 그대’(SBS)도 가족 단위 시청자를 타깃으로 삼은 결과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공중파는 공공성, 문화성, 역사성 등 드라마 외적인 가치도 중시합니다. KBS의 대하사극 시리즈가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드라마에 투영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교육적인 기능도 수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일드라마나 주말 가족극은 소재 선택과 극의 전개 과정에서 중장년층의 선호를 적극 반영합니다.
그러나 공중파 드라마는 심의 규정과 광고주의 요구, 방송시간의 제한과 같은 여러 제약을 받습니다. 그래서 창의적인 콘텐츠 기획이나 실험적인 연출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콘텐츠의 경쟁력은 OTT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시도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SBS), ‘연모’(KBS) 등이 방영됐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파는 여전히 방송 환경 내에서 가장 넓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스토리의 안정성과 출연진의 신뢰도 측면에서 여전히 강력한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OTT 드라마의 부상과 시청자 반응 변화
OTT 플랫폼은 2010년대 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이 글로벌 차원의 성공을 거두면서 공중파의 대체재가 아닌 ‘주류 콘텐츠 생산자’로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티빙, 웨이브, 디즈니+, 쿠팡 플레이 등이 뛰어들면서 드라마 제작 규모와 포맷, 표현 수위 등에서 기존 공중파와의 차별화가 뚜렷해졌습니다.
OTT 드라마는 표현의 자유와 유연한 구성이 가장 큰 강점입니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현실감 있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공중파에 비해 소재 선택과 표현 수위에 대한 제약이 덜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지옥’, ‘D.P.’, ‘수리남’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각각 종교적 광신, 군대의 폭력 문화, 마약 카르텔 문제를 글로벌 감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한국 드라마의 확장성을 입증했습니다.
OTT는 드라마 길이의 조절을 통해 제작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공중파가 보통 16부작 또는 20부작이 고정된 포맷을 고수하는 데 비해 OTT는 6~10부작의 단기물로 구성하거나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시즌제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고, 실험적인 연출도 가능합니다.
OTT는 MZ세대 시청자와의 밀착도가 높습니다. 모바일 중심의 콘텐츠 소비, 회차 몰아보기, 커뮤니티 기반의 밈(meme) 공유 등 MZ세대의 새로운 시청 습관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상당 부분 없앤 OTT의 특성과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OTT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유료 구독에 따른 접근성 문제, 과도한 폭력과 성적 표현으로 인한 피로감, 시즌 간 공백 등입니다. 그럼에도 OTT의 성장은 더욱 빨라질 것이며, 콘텐츠 수출과 글로벌 진출의 핵심 동력이 될 것입니다.
트렌드와 유통 방식 변화: 융합과 선택
대립 구조처럼 보이던 공중파와 OTT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보완하는 융합 모델(크로스 플랫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많은 ‘우리들의 블루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미지의 세계’, ‘굿보이’ 등 많은 드라마들이 (넓은 의미의) 공중파와 OTT에 동시 편성되고 있습니다. 플랫폼 간 경계가 눈에 띄게 허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연이은 성공은 공중파의 제작 관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중파에서도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시즌제 포맷, 에피소드 중심 구성, 회차당 러닝타임 조절 등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OTT가 공중파의 성공 사례를 수용하는 흐름도 생겨났습니다. 공중파에서 검증된 콘텐츠를 리메이크하거나 후속 시즌을 제작하는 것입니다.
콘텐츠 기획 측면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공중파의 경우 방송 편성을 먼저 확보한 후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현재는 플랫폼 타깃, 글로벌 확장 가능성, OTT 트렌드를 고려한 기획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장르의 경계도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로맨스, 가족극, 시대극은 공중파에 적합하고 스릴러, 사회 비판, 미스터리는 OTT에 적합하다는 인식은 이미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실 시청자들은 이미 플랫폼보다 드라마의 작품성을 훨씬 더 중요한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탄탄한 OTT의 오리지널 드라마도 콘텐츠의 품질이 시청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은 플랫폼 아니라 콘텐츠의 품질입니다. 이는 공중파와 OTT 모두에게 기회이자 도전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공중파와 OTT는 경쟁과 공존 속에서 한국 드라마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공중파는 전통성, 신뢰성, 대중성 측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고, OTT는 실험성, 글로벌 확장성, 젊은 감각을 무기로 빠르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작될 드라마는 더 이상 하나의 플랫폼에 얽매이지 ‘크로스 플랫폼’ 전략을 기반으로 유연하게 기획될 것입니다. 시청자도 특정 플랫폼 중심 소비에서 벗어나 콘텐츠의 가치와 메시지를 직접 판단하는 ‘능동적 선택자’로 변화할 것입니다.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은 결국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의 품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