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사회의 변화와 시대상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는 성소수자, 다문화 가정, 장애인 등 그간 소외됐던 다양한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포용력이 아직까지는 미흡하지만 그래도 점차 커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소수자 서사의 등장과 변화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는 외면받거나 희화화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성소수자를 드라마의 중심에 끌어내며 시청자들과 진지한 소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클라쓰’는 성소수자 캐릭터가 드라마의 중심 서사에 깊이 들어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트랜스젠더 캐릭터 마현이는 뛰어난 요리 실력을 갖춘 인물로 드라마의 주요 배경인 식당 ‘단밤’의 주방장입니다. 그녀는 성 정체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식당 멤버들 간 갈등 해결에도 적극 나서는 능동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녀가 사회적 편견에 맞서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드라마 속 다른 등장인물과 시청자 모두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성 정체성의 문제를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의미만큼은 충분히 담아낸 드라마도 있습니다. ‘학교 2021’에는 남자 고등학생 친구 사이에 은근한 감정선이 형성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한 등장인물이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방식을 활용해 당시에 동성 친구에게 품었던 감정이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대놓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동성 간 감정을 암시하는 이런 시도는 10대의 성장 드라마에서 성적 다양성을 조심스럽게 도입한 첫 사례입니다.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이지만, 극이 전개되는 도중에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드라마 전체를 이끄는 메인 서사는 아니었지만, 성소수자의 진지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녹여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문화와 이주 배경 인물의 조명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입니다. 여러 드라마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이전처럼 한국어를 잘 못하거나 유머의 대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이주민의 삶과 그들의 정체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 2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학교에서 은근한 차별과 놀림을 경험하지만, 할머니와 친구들의 따뜻한 지지와 응원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장해갑니다.
‘모범택시 2’에는 베트남 출신 여성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과 산업 현장에서의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장면이 등장합니다. 피해자의 가족이 한국에서 적절한 처우를 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현실을 밀도 있게 그려내 이주 노동자의 인권 문제와 한국 사회의 제도적 허점을 파헤쳤습니다. 이는 많은 시청자들이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두뇌공조’에 등장하는 남미계 외국인 캐릭터는 단순 조연을 넘어 사건 해결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는 한국어가 서툴고 한국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지만, 직업적 소명의식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며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는 다문화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주체적인 역할로 등장한 긍정적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에서 다문화 배경을 지난 인물들이 중심 사건의 주요 축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드라마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장애인 캐릭터의 입체적 표현
과거에도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많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극적인 장치를 위한 요소로 소비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애인 캐릭터가 보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드라마의 핵심 주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로 설정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약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그녀는 탁월한 기억력과 논리력을 바탕으로 많은 사건을 해결하지만,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설정과 감정 표현에 있어선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의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 특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굿 닥터’는 자폐를 앓는 외과의사의 성장기를 그렸습니다. 그는 탁월한 의학 지식과 공감 능력을 갖췄지만,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는 편견과 갈등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동료들의 신뢰를 얻고 환자들과도 진심으로 소통하게 됩니다. 장애인 주인공의 성장 드라마인 이 작품은 미국 ABC에서 리메이크되는 등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라이브’는 경찰의 일상을 다루는 가운데 가정 내에서의 돌봄 문제, 청각장애 부모와 자녀 간 정서적 소통 문제 등을 현실적으로 묘사해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에서는 장애인을 이야기 전개의 단순한 장치 중 하나로 배치하는 게 그치지 않고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내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성숙해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국 드라마는 최근 들어 다양한 정체성과 배경을 가진 인물들을 중심 서사와 갈등의 핵심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성소수자, 다문화, 장애인 캐릭터들이 점차 깊이 있는 묘사를 통해 시청자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드라마 콘텐츠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확장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포용과 다양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콘텐츠는 사회의 변화와 시대상을 반영하고, 때로는 사회를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힘도 가질 수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가 앞으로도 현실을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차별을 줄이고 공감을 넓히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