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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장르’의 현대적 재해석

by moomoobba 2025. 8. 31.

드라마 '연모' 관련 이미지

2020년대 한국 드라마의 눈에 띄는 서사 실험 중 하나는 사극 장르의 현대적 재해석입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재현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현대적 감각을 적극 결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정통 사극이 교육적이거나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글로벌 플랫폼과 OTT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극도 다양한 장르와 융합되고 있습니다. 좀비와 역병을 다룬 ‘킹덤’, 젠더 서사를 담은 ‘연모’, 청춘 성장과 로맨스를 결합한 ‘꽃선비 열애사’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작품들은 사극의 무대와 의상, 시대적 배경을 유지하면서도 오늘날의 사회적 메시지와 트렌드를 담아냄으로써 젊은 세대와 해외 시청자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극은 이제 더 이상 특정 세대만 소비하는 장르가 아니라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글로벌 경쟁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영화적 상상력 결합한 혁신... ‘킹덤’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은 2020년대 한국 드라마 사극 혁신의 서막을 알린 작품입니다. 김은희 작가 특유의 장르적 상상력이 조선 시대라는 배경과 결합하면서 전통적인 사극의 틀을 완전히 새롭게 뒤집었습니다. 왕권 다툼, 기근, 계급 문제 등 역사적 맥락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여기에 ‘좀비 역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도입해 국내외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좀비의 움직임, 대규모 전투 장면, 회당 20억 원이 넘는 제작비로 구현된 스펙터클은 기존 드라마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영화적 비주얼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킹덤’은 단순한 좀비물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음모, 권력의 탐욕, 민중의 고통이라는 무거운 테마를 다루면서도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에 기반한 허구를 치밀하게 엮어냈습니다. 만약 조선 시대에 좀비 역병이 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했지만, 그 안에는 현대 사회의 전염병 공포와 권력의 무능을 비판하는 의미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맞물리며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현실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킹덤’은 시즌제를 도입해 스토리의 연속성과 세계관 확장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전통 사극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형식입니다. 한국 드라마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선구적 사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킹덤’은 사극을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장르물로 탈바꿈시킨 원조격이며, 앞으로 등장할 다양한 하이브리드 사극 드라마의 길을 개척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젠더 서사와 사극의 융합... ‘연모’

KBS2에서 방영된 ‘연모’(2021년)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여성의 정체성과 젠더 이슈를 중심에 놓은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쌍둥이로 태어난 공주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버려지지만, 훗날 쌍둥이 오빠의 죽음으로 왕세자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여성은 권력 구조의 중심에 설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연모’는 이런 전제를 전복하며 ‘만약 여성이 왕이 된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연모’의 가장 큰 성과는 젊은 세대,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사극 서사를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궁중 암투와 정치 싸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적 제약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갈등을 섬세하게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남성 캐릭터와의 로맨스를 통해 여성 주체성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설정은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드러냈고, 국내외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연모’는 또 드라마틱한 의상, 궁중 세트, 전통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의 연출을 더해 글로벌 시청자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갔습니다. 실제로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해외 팬덤을 형성했고, 아시아 및 미주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는 사극이 한국 내에서만 소비되는 장르가 아니라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 글로벌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연모’는 사극이 현대의 젠더 감수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장르로서의 진화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작품입니다. 

로맨스의 사극적 변용... ‘꽃선비 열애사’

SBS 드라마 ‘꽃선비 열애사’(2023년)는 사극을 청춘 로맨스 장르와 결합한 사례입니다. 이 작품은 한양의 고즈넉한 객주 ‘이화원’을 배경으로 사연을 지닌 청춘 남녀들이 모여 각자의 사랑과 성장을 이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의 서사 중심에는 로맨스와 우정, 그리고 자아 발견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기존 사극이 주로 권력 다툼이나 역사적 사건에 집중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입니다. ‘꽃선비 열애사’는 청춘 드라마 특유의 가벼운 설렘과 감정을 담아내면서도 그 배경을 조선이라는 역사적 시대로 설정해 신선한 긴장감을 부여했습니다. 아름다운 한옥 세트와 전통 복식은 시청자들에게 시각적 만족감을 주었고,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는 동시대의 로맨스 드라마와도 연결 고리를 형성했습니다. OTT와 글로벌 유통 덕분에 해외 시청자들 역시 ‘한국판 사극 청춘물’이라는 신선한 포맷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tvN의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2022~2023년)은 청춘 성장과 휴머니즘을 결합한 또 다른 사극의 변용이었습니다. 조선 시대라는 배경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사극에 현대적인 힐링의 요소를 결합했습니다. 이는 한국 드라마가 사극을 통해 단순히 역사적 긴장감뿐만 아니라 동시대 시청자들이 원하는 감정적 위로까지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선비 열애사’와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은 사극이 특정 세대의 무거운 역사극에서 벗어나 청춘·힐링·로맨스 등 현대적 트렌드를 흡수함으로써 세대 간 경계 없이 모두에게 소비될 수 있는 장르로 변모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는 사극의 저변을 넓히는 동시에 한국 드라마의 장르 실험을 더욱 활발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로 평가할 만합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2020년대 한국 드라마에서 사극은 더 이상 과거를 단순히 재현하는 역사극이 아닙니다. ‘킹덤’은 좀비와 역병이라는 장르적 상상력을 통해 사극의 혁신과 세계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연모’는 사극에 젠더 문제를 투영함으로써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고, ‘꽃선비 열애사’와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은 청춘과 휴머니즘을 통해 사극의 대중성을 확장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사극이 전통적 장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트렌드와 결합해 계속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으로의 한국 사극은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하되 글로벌 시청자와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서사와 메시지를 담아내며 더욱 다채로운 형태로 발전할 것입니다. 사극이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자 현재와 미래를 함께 반영하는 장르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