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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캐릭터의 주체적 서사 강화

by moomoobba 2025. 8. 19.

드라마 '마인' 관련 이미지

2000년 이후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여성 캐릭터의 재현 방식입니다. 과거에는 사랑과 희생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여성상이 주를 이뤘지만, 2010년대를 거치며 전문성과 독립성, 사회적 목소리를 가진 주체적 인물로서의 여성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2020년대 OTT 시대에 이르러서는 욕망과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며 서사를 이끌어가는 다층적 여성 캐릭터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이 강화되는 과정을 2000년대 초반, 2010년대, 2020년대로 나눠 시기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순정 멜로의 여성상과 그 한계 

2000년대 초반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 전역에 ‘한류 열풍’을 일으켰지만, 여성 캐릭터의 재현 방식은 전통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대표작이라면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를 들 수 있는데, 두 작품의 여성 주인공 은서(송혜교 분)와 유진(최지우 분)은 모두 사랑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은서는 본인이 불치병에 걸린 상황 속에서도 남성과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유진은 끝없는 기다림과 아픔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물상은 당시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에 ‘순정 멜로’라는 장르적 특성을 각인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 측면에서는 극히 제한적이고 왜소했습니다. 이 시기의 여성 캐릭터는 ‘사랑의 객체’로서는 충실히 기능했지만, 자기 욕망이나 사회적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여성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방식은 눈물, 희생, 순정이었고, 이는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서사 방식에 대한 비판이 커졌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여성상이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데다 여성 캐릭터가 남성의 서사를 강화하는 장치로만 소비되는 구조가 드라마의 확장성을 제한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여성 인물을 보다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변모시킬 필요성이 점차 커져갔습니다.

사회와 직업 속에서 목소리 찾기

2010년대는 여성 캐릭터 서사의 큰 변곡점이었습니다. 사랑과 가정의 서사에 수동적으로 머물던 여성 캐릭터가 전문적 정체성과 사회적 목소리를 갖추게 되었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비밀의 숲’에서 한여진(배두나 분)은 수사 과정에서 남성 주인공과 대등한 위치에 서며 능동적인 수사관으로 활약합니다. 여성 캐릭터가 ‘조력자’ 역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판단과 능동적인 선택을 통해 서사를 끌어간 것입니다. 이를 두고 여성 캐릭터도 사회정의 구현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김태리 분)은 여성 의병으로서 나라를 위해 싸우는 인물입니다. 그는 남성 주인공과의 사랑보다 독립운동이라는 가치를 택함으로써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여성이라는 기존 서사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고애신의 선택은 여성 캐릭터가 역사적 주체로서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로 증명한 사례였습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김미소(박민영 분)는 단순한 연애 서사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찾기 위해 과감히 퇴사를 선택합니다. 이는 자기 주도적 결정을 내리는 여성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김미소의 선택에 공감을 표했고,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아이유 분)은 사회적 약자이면서  고통받는 청년이지만,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자립을 이루고 성장해갑니다. 이를 통해 ‘구원받아야 하는 여성’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삶을 변화시키는 주체적 존재임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이들 작품은 공통적으로 여성 캐릭터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연애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독립적 주체로 서게 한 것입니다. 이는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시장에서 사랑받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다층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2020년대에는 OTT 플랫폼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여성 캐릭터의 재현 방식이 한층 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확장됐습니다. 창작자들은 기존 방송사 편성의 제약에서 벗어나 좀 더 대담한 시도와 실험을 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여성 캐릭터는 욕망과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그려졌습니다. ‘마인’은 재벌가 여성들이 가부장적 체제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서희수(이보영 분)와 정서현(김서형 분)은 더 이상 ‘재벌가 안주인’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신념에 따라 삶을 재정립합니다. 특히 정서현은 한국 드라마에서는 드물게 동성애적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이는 여성 캐릭터가 더 이상 이성애적 관계에 종속되지 않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여성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는 법적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합니다. 단순히 ‘특별한’ 캐릭터가 아니라, 성별과 장애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주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나’에서 유미(수지 분)는 원하는 삶을 위해 거짓 정체성을 선택합니다. 유미의 선택은 그 자체로 도덕적 논란을 부르기도 했지만, 이는 여성 캐릭터가 욕망을 끝까지 추구하는 주체적 인물로 묘사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이처럼 2020년대 여성 캐릭터는 선악의 이분법에 묶이지 않고, 때로는 모호하고 때로는 과감한 선택을 하며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가 사회적·문화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국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는 2000년대 초반에는 눈물과 희생의 상징으로 묘사됐지만, 201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대에는 자기 욕망과 정체성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겨울연가’, ‘미스터 션샤인’, ‘마인’은 각각 이들 세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한국 드라마는 이제 여성 캐릭터를 통해 더 넓은 사회와 세계를 탐구하고 있고, 이로 인해 글로벌 무대에서도 주목받는 ‘문화적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드라마가 여성 캐릭터의 주체적 서사를 통해 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