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한국 드라마 시장은 TV를 넘어 OTT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했고, 그 과정에서 영화계의 창작자들이 대거 진출하는 흐름이 두드러졌습니다. 과거에는 영화감독과 작가들이 드라마를 ‘소규모 콘텐츠’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제작비 수백억 원 규모의 작품이 기획되면서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습니다. 김은희 작가의 다. 김은희 작가의 ‘킹덤’, 윤종빈 감독의 ‘수리남’, 정동윤 감독의 ‘경성크리처’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동시에 영화적 스케일과 드라마 특유의 장기 서사가 결합된 새로운 유형의 작품들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영화적 스케일을 드라마에 담다
영화 출신 작가와 드라마 산업의 만남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는 김은희 작가를 먼저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원래 영화 시나리오 작업으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드라마 ‘싸인’(2011년), ‘유령’(2012년), ‘시그널’(2016년) 등으로 자신만의 장르적 색깔을 구축하며 한국 드라마계의 대표적인 스토리텔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시그널’의 대성공으로 장르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의 관심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작품이 바로 ‘킹덤’(2019~2020년)입니다. ‘킹덤’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좀비물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에서부터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통적인 사극의 무게감과 현대적 장르인 좀비 서사를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하이브리드 장르를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규모 좀비 전투 장면, 화려한 세트, 디테일한 분장과 특수효과는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수준이었습니다. 제작비가 회당 20억 원 이상 투입된 덕분에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극장 못지않은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화적 스케일의 구현은 한국 드라마가 ‘국내용 TV 콘텐츠’를 넘어 세계 시장을 겨냥한 블록버스터급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김은희 작가는 이어 ‘지리산’(2021년)을 집필하며 또 다른 실험에 나섰습니다. 이 드라마는 국립공원 레인저들의 삶과 죽음을 중심으로 초자연적 미스터리 요소를 결합한 독창적인 서사를 전개했습니다. 이응복 감독이 연출을 맡아 비주얼적으로도 웅장한 자연과 인간의 갈등을 영화적 감각으로 담아냈습니다. 방영 당시 일각에서 완성도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제작비 3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한국 드라마의 산업적 역량을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특히 드라마가 다룰 수 있는 소재와 무대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적 도전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킹덤’과 ‘지리산’의 사례는 영화적 서사 구조와 비주얼이 드라마로 옮겨지면서 드라마라는 매체가 더 이상 영화의 하위 장르가 아님을 분명히 증명했습니다. 김은희 작가와 같은 창작자의 도전은 한국 드라마가 OTT 시대를 맞아 세계적인 콘텐츠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였고, 이후 영화감독과 작가들이 드라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영화감독들의 드라마 연출 참여
영화감독들이 드라마 연출에 참여하는 현상은 202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2022년)입니다. 이 작품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공작’ 등을 연출했던 윤종빈 감독이 맡았습니다. 윤종빈 감독은 영화에서 보여주던 묵직한 범죄극의 감각을 그대로 드라마에 이식했으며, 하정우·황정민·조우진·유연석 등 충무로 톱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하여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 시리즈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시청자들은 집에서도 극장급 스토리텔링을 경험할 수 있었고, 이는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사실상 허물어졌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경성크리처’(2023~2024년) 역시 영화적 감각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는 정동윤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그는 영화적 카메라워크와 미장센을 드라마에 적용하여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괴수 장르물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적 분위기와 괴수라는 판타지적 요소의 결합은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상케 했으며, 이는 한국 드라마가 장르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박서준·한소희 등 스타 배우들의 합류로 ‘경성크리처’는 글로벌 OTT 시장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외에도 영화계 인재들의 드라마 진출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화 ‘신세계’로 유명한 박훈정 감독은 드라마 ‘마이 네임’(2021년) 기획 단계에 관여하며 드라마에서 범죄 장르 서사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영화 감독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을 넘어 배우 캐스팅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하정우·황정민·박해수·전종서 같은 충무로 배우들이 OTT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감독과 작가 네트워크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움직이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 경계 해체와 미래 방향성
영화 감독과 작가들의 드라마 진출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첫째, 제작비 규모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 드라마는 16부작 멜로와 가족극 중심으로 제작되었고, 제작비 역시 수십억 원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OTT가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서면서 한 작품당 제작비가 수백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영화 한 편의 제작비에 맞먹는 수준이며, 따라서 영화감독과 작가들이 드라마 제작에 참여할 동기가 충분히 생겼습니다. 둘째, 드라마와 영화의 소비 방식 변화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OTT는 전 세계 시청자들이 동시에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고, 이는 드라마를 사실상 글로벌 영화 시리즈와 같은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실제로 ‘킹덤’, ‘수리남’, ‘경성크리처’ 등은 한국을 넘어 미국·유럽·아시아 등지에서 동시 방영되며 글로벌 팬덤을 확보했습니다. 영화 감독과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넓은 무대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드라마로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 창작 방식의 융합입니다. 영화는 보통 2~3시간 안에 서사를 완결해야 하지만 드라마는 여러 회차에 걸쳐 캐릭터와 세계관을 세밀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은 드라마에서 장기 서사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창작 실험을 하게 되고, 이는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됩니다. 예컨대 ‘수리남’의 경우 영화였다면 표현하기 어려웠을 법한 인물 간 갈등과 배경 서사를 6부작 드라마로 풀어내며 더욱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한민 감독 같은 충무로 거장들이 드라마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글로벌 OTT 플랫폼들도 영화감독들에게 드라마 시리즈 제작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한국 드라마 산업이 영화와 동등한 위상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주며, 향후 더 다양한 장르와 실험적 작품들이 등장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2020년대 한국 드라마 산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영화 감독·작가들의 본격적인 진출입니다. 김은희 작가의 ‘킹덤’, 윤종빈 감독의 ‘수리남’, 정동윤 감독의 ‘경성크리처’ 등은 드라마가 영화적 스케일을 구현할 수 있음을 증명한 대표적인 작품들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유명 영화인들이 드라마에 참여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드라마 산업 전체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전략적 진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앞으로 더 많은 영화계 인재들이 드라마로 진출하며 새로운 서사적 실험을 이어갈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