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한국 드라마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과 선택을 세밀하게 담아내는 ‘다층적 캐릭터’ 서사로 진화했습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100%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상황과 조건에 따른 개인들의 판단과 선택이 선행과 악행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드라마 속 캐릭터를 무조건적인 선한 역할과 무조건적인 악한 역할로 분명하게 구분하는 설정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럽습니다. 최근 들어 시청자들이 ‘악역’을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요구하고, 제작진도 악역의 상처와 배경을 묘사하면서 입체적인 인물상을 구축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2020년대 드라마 속 캐릭터의 변화를 인물의 복잡성, 사회적 메시지,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선악 이분법 넘어선 인물의 복잡성
한국 드라마는 오랫동안 ‘착한 주인공 vs 나쁜 악역’이라는 구도 속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사회 문제에 대한 감수성도 커지면서 단순한 대립 구조는 더 이상 주목을 받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로 인해 등장한 것이 바로 다층적 캐릭터 서사입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범죄심리 수사 드라마로 사이코패스를 잡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단순히 ‘형사는 선, 범죄자는 악’이라는 구도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범죄자의 과거와 내면의 상처, 이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까지 세밀하게 조명했습니다. 범죄 행위를 결코 정당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범죄자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또 범인을 잡는 형사도 정의감만으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라 심리적 압박과 트라우마를 가진 인간으로 그렸습니다. 캐릭터 간의 선악 구도가 아닌 복합적 인간 군상들의 충돌로서 작품을 이끌어간 것입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도 선과 악이 뒤섞인 캐릭터입니다. 주인공 윤현우(송중기 분)는 재벌가의 부당한 행위로 인해 희생되었다가 막내 아들 진도준으로 환생한 뒤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며 복수를 꿈꿉니다. 그런데 그의 복수는 겉으로는 정의로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선택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 결합되면서 어느 시점부터는 ‘선한 주인공’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인물이 됩니다. 시청자들은 그의 복수심에 공감하면서도 점점 더 권력화되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캐릭터가 변화하고 흔들리는 과정은 다층적 서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성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OTT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이 동시에 시청하면서 보편적이고 단선적인 선악 구도보다는 인간의 복합성을 탐구하는 이야기가 더 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2020년대 드라마는 단순한 ‘정의의 승리’가 아니라, 이해와 공감, 모호함 속에서의 선택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진화했습니다.
다층적 캐릭터를 통한 사회적 메시지
다층적 캐릭터 서사는 단순한 드라마적 재미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도 작동합니다. 특히 2020년대에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개인의 선택이 얽혀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많아졌습니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이 성인이 된 이후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의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표면적으로는 피해자의 정의로운 복수극의 요소가 강하지만, 실제 드라마의 전개 과정에서는 문동은을 완전히 선한 인물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주변 인물들을 계획적으로 이용하거나 냉혹한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또 가해자들도 악한 인물로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각자의 성장 배경과 인간적 허점을 그려냄으로써 그들이 왜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학교폭력이 일차적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는 학교폭력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소년심판’은 소년범죄를 다루면서 가해 청소년들을 단순히 ‘미성숙한 악인’으로만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는 이들 가해 청소년의 가정 환경, 사회적 무관심, 제도적 허점 등을 그려내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들이 범죄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 과정에 대해 사회 전체가 성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는 판사들 캐릭터도 무조건적인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개인적 상처와 신념, 갈등을 가진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범죄=악’이라는 구도에 그치지 않고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구조적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드라마 속 다층적 캐릭터 서사는 사회적 문제를 입체적이고 구조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가집니다. 시청자들은 선과 악이 고정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 속에서 변화하고 교차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드라마들을 통해 살아가는 현실을 한번 더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다층적 캐릭터의 글로벌 경쟁력
최근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인기는 단순히 자극적인 서사나 화려한 연출 덕분만은 아닙니다. 많은 해외 비평가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인물 서사의 깊이에 주목합니다. 캐릭터의 성격이 ‘선 vs 악’이나 ‘흑 vs 백’으로 분명하게 나뉘는 게 아니라 한 캐릭터 안에 모순과 상처, 성장과 타락이 공존하는 방식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드라마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으로 한국 드라마의 차별화된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서구 드라마가 장르적 공식을 강조하는 데 비해 한국 드라마는 인물의 감정선과 인간적인 모순을 세밀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더 글로리’의 경우 글로벌 시청자들은 복수극의 요소를 뛰어넘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내면을 동시에 파고드는 입체적 서사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여성 주인공이 능동적 주체로서 복수를 이끄는 과정, 그런데 그녀가 완전히 ‘선한 존재’가 아님을 드러낸 점 등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한국 특유의 재벌 구조와 가족 간 권력 다툼을 소재로 삼으면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는 낯선 사회적 배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국적 풍경’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 자체에 열광하게 한 것은 인간이 권력 앞에서 어떻게 변하는가라는 보편적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선택이 정의로운 복수심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에 대한 욕망과 타협하는 모습에서 복수의 성공이나 실패보다 인간 본성의 양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전 세계 팬들에게 강한 울림을 준 바로 이 지점이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만든 요소입니다. OTT 시대에 들어서면서 글로벌 시청자들은 예전처럼 단순히 ‘선=승리, 악=패배’라는 도식적인 결말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물의 모순과 성장, 그리고 불완전한 해답 속에서 느껴지는 현실적 서사에 더 큰 흥미를 보입니다. 주인공이 끝내 완벽히 승리하지 못하거나, 인물의 상처가 남아 있는 결말이 오히려 더 진실성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한국 드라마가 보여주는 ‘정답 없는 이야기’는 시청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줌으로써 차별화된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2020년대 한국 드라마는 선악 이분법을 넘어 인간의 복합성을 드러내는 다층적 캐릭터 서사를 중심으로 진화했습니다. 많은 드라마들이 등장인물을 편가르기 하는 대신 각자의 상처와 욕망, 사회적 배경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시청자들의 캐릭터 선호도를 넓히고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특히 많은 사회 문제가 개인의 일탈은 물론 공동체의 구조적 요인이 반영된 결과라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사회적 성찰이 가능하게 합니다. 이와 같은 특징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