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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다

by moomoobba 2025. 8. 6.

 

드라마 '송곳' 관련 이미지

한국 드라마는 그간 가족, 로맨스, 코미디 등 감정 중심의 서사에 주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 불평등과 부조리 등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 고발형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현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계기가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사회 고발형 드라마의 흐름과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직장 내 부조리와 계층 현실

‘미생’은 한국 직장 사회의 민낯을 현실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회 고발형 드라마입니다. 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다가 대기업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주인공이 수직적 조직 문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성과 중심의 비인간적 평가주의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력과 능력보다 배경과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고발했습니다. 많은 직장인 시청자들은 상사의 권위주의, 연차와 직책에 따른 차별, 파벌 형성과 사내 정치 등 현실에서 겪는 부조리한 상황에 깊은 공감을 표했고, “회사는 전쟁터”라는 드라마 속 대사는 한동안 인구에 회자됐습니다.

‘송곳’은 대형마트의 부당 해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드라마입니다. 그간 직간접적으로 숱하게 경험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회피해왔던 노동 현장의 부조리를 고발한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특히 실제 유통업계 노동조합들이 경험한 사례를 모티브로 삼아 자본과 노동 간 불균형, 노동조합 조직화 과정에서의 감시와 탄압, 노동자의 기본권 무시 등 현실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불공정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법과 제도의 틀을 바꿔낼 수 있어야 한다는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우리는 인간답게 일하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됩니다.

‘블랙독’은 사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기간제 교사가 겪는 현실적인 차별과 생존 경쟁을 담았습니다. 이를 통해 직장으로서의 학교가 가진 폐쇄성과 계급 구조를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드라마는 기간제 교사의 고용 불안정성, 교직원 사회의 파벌 형성과 따돌림 문화, 조직 내 생존 전략, 공공성과 사적 이해의 충돌 등을 섬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통해 교육계의 현실을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됐을 것입니다. 

이들 작품은 모두 ‘일터’에서의 구조적 불평등과 정규직 중심의 폐쇄성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 사회의 노동 현장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조명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부패한 권력과 법의 경계

‘비밀의 숲’은 법조계의 부패 구조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권력 내부의 자정 능력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회 고발 드라마입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논리적인 검사가 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 내부의 부패, 검찰과 재벌 간 유착 관계, 권력 내부의 암투 등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지만 매번 알 수 없는 벽에 부딪치곤 합니다. 드라마는 이 과정을 통해 법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정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또 정의를 외치면서도 권력과 이익을 좇아가는 검찰 조직의 민낯을 폭로합니다. 특히 검찰, 언론, 재벌이 정보를 공유하며 사건을 조작하고 진실을 뒤트는 장면은 우리 사회의 권력 카르텔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인사이더’도 사법 제도와 권력 구조의 부패를 고발한 작품입니다. 잠입수사를 위해 교도소에 수감된 사법연수생이 그곳에서 권력자들이 은밀하게 즐기는 도박판에 뛰어들어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극의 전개가 다소 난해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법 시스템 내부의 비리와 권력형 범죄의 실체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악마판사’는 가상의 디스토피아에서 진행되는 공개 재판 형식을 빌려 정치권력과 사법 시스템의 유착을 좀 더 노골적으로 다뤘습니다. 이 작품은 정계와 재계 거물들이 거대한 이익 공동체를 이루며 법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법이 언제든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고 포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왜 오수재인가’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의 한 축이 되고 있는 대형 로펌의 문제를 진지하고 비판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차별과 소수자의 현실

사회 고발형 드라마는 권력 비판이나 제도 고발을 넘어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소수자의 현실에도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는 그간 주변 인물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서사의 중심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장애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과 차별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장애를 ‘다름’으로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많은 평론가들과 시청자들은 이 작품이 ‘사회적 차별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을 소비하는’ 방식을 벗어났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라는 지역적 배경 속에서 청각장애, 미혼모, 다문화 가정, 노년층, 정신질환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습니다. 이 드라마는 내내 거창한 서사를 내세우지 않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가 쉽게 외면해온 발언권 약한 존재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잔잔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가 좀 더 포용적일 때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이 겪는 세대 차별, 관계 단절, 자기 존엄의 흔들림을 전면적으로 다룬 웰메이드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모녀를 중심으로 한 6070 세대의 잔잔한 이야기에는 외로움, 건강, 연애와 우정 등 노년기에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싶은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이러한 노년의 현실을 무겁거나 비관적인 시선 대신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방식으로 풀어냄으로써 ‘나이 듦’에 대한 드라마의 시선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장르물이면서 학교 내 따돌림, 청소년 폭력, 교사들의 무책임, 시스템의 무능 등 10대 청소년들을 둘러싼 구조적 폭력과 무관심을 정면으로 고발했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진 상황에서 10대 청소년들이 감당해야 할 잔혹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청소년도 ‘사회적 고발’의 대상이자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드라마, 더 이상 허구가 아니다

최근 한국 드라마는 허구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적극 반영하면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회 고발형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현실의 노동 문제, 법조계의 부패, 권력의 남용, 약자의 고립 등은 드라마 속 픽션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공동체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이들 콘텐츠는 강한 공감과 몰입을 유도합니다.

사회 고발형 드라마의 확대는 단순한 장르의 변화가 아니라 드라마의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을 반영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드라마들이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